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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하는 오아시스♥
Our.Hour/Our.Footmark

네오라우흐 X 로사로이 <경계에 핀 꽃> 스페이스K 서울

by Our Art Space 2021. 12. 10.


작품 해설은 단순 기록용으로 출처는 스페이스K에서 제공하는 오디오가이드(audio clip) 로부터 가져왔습니다

2. <팽이>

화면을 꽉 채운 두 여인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팽이채를 쥐고 있습니다. 두 여인 중 한 명은 팽이치기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 명은 팽이에는 관심이 식은 듯 그저 관람객을 은근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렇듯 같은 시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행위를 하고 있는 이질적인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는 로사 로이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개별적인 두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합니다.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 모티프의 근원은 로사 로이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향 마을을 떠나, 라이프치히로의 이동은 그녀에게 큰 외로움과 상실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에 로사 로이는 자신만을 위한 ‘상상 친구’를 만들어 내었고, 잃어버린 어린시절 소꿉친구의 환상은 오랜 시간이 지나 그녀의 화면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화면에 초대된 제 2의 인물은 타자성, 즉 ‘내가 아닌 것’을 통해 역설적으로 ‘나인 것’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렇듯 로사 로이의 작품 속에서 쌍둥이들은 결코 완벽히 똑같거나 서로의 복제품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동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의 대화나 교환을 통해 서로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그 경험을 나눠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얼핏 보기에 같아 보이는 쌍둥이는 사실상 차이 나는 반복, 반복되는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아침>

해가 비친 듯 붉게 물든 강가 주변으로 네 쌍의 쌍둥이가 등장합니다. 베개에 기대어 잠든 여인의 품 속에 그녀와 함께 잠든 쌍둥이의 꿈이 그들의 현실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강과 번져가는 꿈,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또 다른 쌍둥이들, 예컨대 요정 같이 작은 쌍둥이, 나무에 걸터앉은 쌍둥이, 그리고 홀로 생각에 잠긴 듯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또 다른 쌍둥이 여인이 동시에 등장합니다. 이들이 모여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장소는 신화속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강가일수도, 어느 전설에 등장하는 마법의 샘물일수도, 아니면 지금은 사라진 고대의 한 휴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로사 로이는 역사가 주로 남성에 의해 기술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의 역사는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글이 아닌 구술로 전달되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과거에서부터 여성들은 저녁에 같이 모여 옷감을 짜거나 물을 길으며 지식을 전달하고,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 작품 속 신비로운 강가에 모여 있는 네 쌍의 쌍둥이들도 역시 밤새워 그들의 역사를 만들다가 잠들어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구술로 전달한 역사는 캔버스에서 흩어지고 있는 아침 햇살처럼 전부 이어지기는 어렵겠지만 햇빛이 강물에 번져 흘러가듯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느껴집니다.


7. <긴 하루의 저녁>

로사 로이는 백일몽과 현실을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융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 작품에서 잠든 인물의 주위를 휘감는 기이한 회오리와 몇 명의 여성은 공간과 시간을 뒤섞어 그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늑한 소파와 장식적인 벽지가 돋보이는 가정집의 실내를 배경으로 삼는 것은 다시 한번 로사 로이의 작품에서 개인적 공간이 특유의 여성적인 친밀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로사 로이가 회오리의 색으로 채택한 검은색, 금색, 그리고 빨간색이 그동안 여성의 머리칼을 분류하는 대표적인 세가지 색상이라는 점도 의미심장 합니다. 이러한 친밀함 속에서 잠들어 있는 시간은 공포스럽거나 무섭지 않게 되고, 오히려 어딘가 신비롭고 매혹적인 마력을 갖게 됩니다.

<조용한 시간>

로사 로이의 그림에서 남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강인하고 자신만만한 여성들의 주변부를 맴돌거나, 성별을 알아볼 수 없는 혼성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 작품에서 남자로 보이는 인간의 얼굴이 식물처럼 주렁 주렁 열려 있고 그 옆에서 여성 인물들이 관람객을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이는 자신감 넘치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여성을 묘사합니다.
여성들이 옛 독일의 복장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 등장하는 로사 로이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이 그림 속 두 여성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복장을 한 채 카페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듯한 일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로사 로이는 동서독의 재통일 이후 달라진 여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 여성 역할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여성성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표합니다. 따라서 작가는 오늘날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여성은 서로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또한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어떻게 보완하고 마주 살아갈 수 있을지 작품을 통해 탐구해갑니다.

6. <저녁>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을 연상시키는 낮과 밤이 공존하는 배경, 그리고 루소의 <잠든 집시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한 마리의 늑대가 쌍둥이 한 쌍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의 건국 신화, 즉 정치 싸움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성장했다는 로마의 전설을 연상시킵니다. 특이한 점은 늑대의 등 뒤로 사슴 뿔이 돋아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야숙을 한 듯한 자취가 곳곳에 남겨져 오히려 부재를 통한 존재가 강조된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로사 로이는 작품 속에서 가까운 것과 먼 것, 현재와 과거를 연결짓길 시도하며 이에 따라 낯선 만큼 친숙하고, 초현실적인 만큼 지극히 현실적이며, 또 실제적인만큼 터무니없기도 한 느낌을 창출하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줍니다.

3. <만유인력>

지금 이 전시장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물질들과 일정한 힘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땅으로 꺼지거나 자석처럼 옆 사람에게 달라붙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사이에 작용하는 밀고 당기는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몸을 맞댄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쌍둥이는 밀고 당기는 긴장을 가시화합니다. 파란색의 금속 나선형 튜브에서는 차갑고 통제된, 그리고 차분히 지구를 향해 움직이는 에너지가 나타나는 반면 칠판에 그려진 그림에서는 무한대를 향해 바깥쪽으로 나아가는 힘이 화살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관람객으로부터 등을 돌린 여성이 왼손으로 나선형 튜브를 밀고 오른쪽의 칠판 속 그림을 대안으로 가리키고 있는 반면 또 다른 여성은 칠판을 안쪽 방향으로 잡아 끕니다. 이렇듯 쌍둥이를 통해 보여지는 교환의 구조, 그리고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는 안정적인 상태에서 불안정하고 무질서한 상태로 넘어가는, 즉 변화의 가능성이 내부에 들끓는 아슬아슬한 순간의 긴장감을 의미하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긴장감은 쌍둥이의 발 밑에 위치한, 어두운 풀이 돋아나는 돌담에서 또 한번 강조됩니다. 돌담은 땅을 구획하는 경계로, 이 돌담의 가장자리에 일직선으로 위태롭게 서 있는 쌍둥이의 모습은 이들이 잡아당기고 미는 힘 그 사이의 경계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9. <추측>

로사 로이의 매혹적인 작품은 그 안에서 인물이 자신의 법칙과 습관을 키워 나가는 독립적인 세계를 구성합니다. 그녀의 그림을 통해 관람객은 지하에서부터 무한대로 확장되는 다양한 풍경 속에, 다양한 행동을 주도하는 여성 인물이나 신화적 인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카세인을 사용해 얼굴이 비칠만치 투명해진 색채의 설경 속, 사람의 얼굴을 한 동물에 한 여인이 포근히 기대어 잠들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짐이 한가득 실려 있는 썰매를 끄는 동물 한 마리가 큰 눈으로 관람자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관람자에게 여인의 잠을 방해하지 말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는 듯합니다. 배경에는 독일의 옛이야기에 나올 법한 뾰족 지붕의 목재 가옥과 흐릿한 설산, 어느 얼음여왕의 유리성 같은 뾰족한 물체가 놓여있어 관람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합니다. 고요한 분위기의 그림 속 광경은 북유럽 전설의 한 장면일까요? 혹은, 잠들어 있는 여인의 꿈속일까요? 저 멀리 보이는 검은 물체는 비밀에 휩싸인 무성한 숲과, 여인의 평화로운 단잠을 위협하며 몰려오는 불길한 연기 중 어느 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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