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같은 민경희작가의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
책 한 권의 내용이 하나의 큰 이야기 덩어리가 아니라 다 읽고 난 후 “크게 남는 건 이거다” 라는 건 모르겠는데, 그림이 예쁘고 글이 섬세한 만큼 책에서 어떤 온기가 느껴진다(작가 한 사람이 글 쓰고 그림을 그려서인지 내용의 전달력이 좋고 책 표지에 에폭시 얹은 후가공만 봐도 확실히 감각적인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각각의 퀼트천 조각들을 하나 하나 이어 만든 이불처럼 묘하게 불쾌했거나 좋았던, 표현하기 애매했던 감정의 조각들을 잘 이어 하나의 책으로 엮어놓은 것 같다. 어느 페이지를 마주할 땐 내가 하고픈 말을 대신 해주듯 속 시원하게 공감이 되면서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책을 내기로 한 후 우울증까지 겪은걸 보면 작가도 상당히 내적이면서 예민하거나 혹은 예리한 것 같다. 글과 그림이 소통의 도구인 듯한데 작가 나름의 온도가 있으니 피를 토하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선수?들과 감히 비교하지 않으며 지금 나름의 색깔을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새롭게 안 사실 하나,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어 매일 같은 일상이어도 지루함을 모른단다. 그렇게 과거도 미래도 없는 고양이처럼 ‘이번 생은 나도 처음이니까’하며 현재만 즐기며 단순하게 산다면 속이 편하겠다 싶었다가도 미래가 없다는 건 소망도 없는 것일테니 급 인간인 것에 감사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다 보여주고자 한다. 독자들도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함께 사랑할 거라며 “우리 지금 그냥 사랑하자” 하고 용기 있게 글을 마무리 짓는다. 사실 나도 글 쓰며 그림 그리며 ‘내일’을 살고싶은 작은 소망이 있는데🤭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작가가 부럽기도 하면서 훗날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책 한권을 상상해 보니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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